제가 성장하던 때에는 쌀밥을 먹는 일이 흔치 않았습니다.
보리밥 아니면 국수 아니면 보리밥에 감자를 집어넣거나 아니면 밀가루 범벅을 집어넣어서 가능하면 쌀이나 보리는 적게 들어가고 감자가 밀가루 범벅으로 대체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삿날은 하얀 쌀밥을 지었기 때문에 제삿날은 이 밥 먹는 날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제삿날을 기다렸습니다.
물론 이나마도 저희가정은 4대째 믿음의 가족이기 때문에 제사는 없고 추도예배를 대신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제사음식과 추도예배 음식은 그 규모에서 다릅니다.
한국의 제사는
크게 천지신명을 비롯한 자연물에 드리는 제사와 조상에게 드리는 제사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리고 조상에게 드리는 제사가 얼마나 많은지 최소 한 달에 한번이었습니다.
그날은 순서도 순서지만 그 제사상도 최고의 정성으로 드렸습니다.
이런 제사를 조선 중기인 17세기 전반까지는 봉제사를 후손이 행해야 할 의무로서 여겼고, 봉제사에서 아들과 딸을 구별 또는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봉제사를 전담하는 사람은 상속에서 우선권이 주어졌습니다.
이는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에게 권리·권한을 준다는 뜻입니다.
점차 장남과 맏며느리는 제사를 독점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상속에서 상속 지분을 독점하게 되었습니다.
한 가정의 맏며느리가 되면 제사라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1969년 가정의례준칙 및 가정 의례법을 제정하여 허례허식을 피하고 검소한 제례를 갖추도록 권장해 온 이후, 기제의 대상이 4대 봉사에서 부모, 조부모 및 배우자로 국한되었고 1999년 8월 31일 “가정의례준칙”은 폐지하고 동일자로 “건전가정의례준칙”을 공포하였습니다.
요즈음은 세상이 달라져서 제사의 풍습도 달라져 명절이 되면 휴양지로 제사 음식을 배달하고 거기에서 드립니다.
제사 순서도 보면 얼마나 복잡한지 모릅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강신, 참신, 초헌, 아헌, 종헌, 삽시, 유식, 헌다, 사신, 납주, 철상, 음복의 순서로 끝을 냅니다.
우리는 제사를 예배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 보면 예배라는 말을 쓰지 않고 제사라는 말을 썼었습니다.
구약의 제사도 요즘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의 제사 못지않았습니다.
제사를 드릴 때에 언제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과 최고의 정성으로 제사를 드리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들의 예배에서는 그와 같은 제사의 정성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요즘 우리의 예배와 우리의 살림살이를 비교해 보면 우리의 살림살이에 대한 정성이 예배에 대한 정성을 훨씬 앞서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자기를 위한 씀씀이가 예전보다
훨씬 높아지고 많아졌다는데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상은 여전이 빈곤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옆 전 두푼이 아니라 부자의 옆 전 두푼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한 성전건축을 위하여 정말 자신의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우리는 지난주일 맥추감사주일로 드렸습니다.
맥추감사주일을 맞아도 우리 마음에는 솔직히 별다른 감동이 없습니다.
불과 50년, 60년 전에 우리는 아프리카 사람들만큼이나 가난하였었는데 지금 우리는 상상도 못할 여건과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상상도 하지 못하는 지출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하나님께 대해서는 여전히 변변치 못한 제사상을 차려 드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소리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 아멘!

    2017.07.09    2부예배 말씀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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