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그분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바로 보이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할 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왜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이후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내가 가고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어떤 분입니까? 성령님은 단순히 어떤 ‘마음’이나 어떤 ‘관념’이나 ‘능력’이 아니라 그분은 “인격체”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은 3위 일체 하나님으로서 인격적인 존재자요 개성을 가진 존재자로서 하나님의 한 위격(person)으로서 지, 정, 의를 가진 분이며 “하나님의 영”입니다.

제가 성도님들께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예배의 성공자가 신앙의 성공자이고 인생의 성공자입니다.” 사실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행위가 있다면 예배입니다. 예배를 떠나서 우리의 믿음이 온전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올바른 예배자로 서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보면 우리의 예배가 너무나도 많이 무너졌습니다. 예배는 다분히 형식적이 되고 예배자는 위선자가 되었습니다. 이 전에 비해 매우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만 어떤 때는 쇼를 보는 것과 같을 때가 있는 것은 저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찬송을 한 곡 불러도 감동이 있는 찬송을 불러야 하고, 말씀을 듣는 태도가 정말 사모하고 갈급한 마음으로 들어야 하고, 기도를 해도 온 맘을 다해서 드려야 하는데 과연 우리의 예배가 그런 예배를 드리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예배의 회복입니다. 또 직분이 무엇인가?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령이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을 얼마나 실감하면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에 압도당하고 성령에 붙들려 살아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가 공허한 이유는 성령을 놓쳐서 그렇습니다. 성령을 떠나서 그렇습니다. 성령은 한 번도 우리를 떠난 적이 없는데 우리가 성령을 떠난 것입니다. 우리는 그 성령을 의지하고 그 성령에 이끌려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또 다르게 표현하신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는 “파라클레토스”라고 하는데 옆에서 도와주신다는 뜻입니다. 은혜를 보전한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6:7에 보면 정말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떠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이후 변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우선 내가 변합니다. 그리고 담대해집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는 불행 끝 행복 시작이 됩니다. 사람들은 모두 육신의 것을 구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 잘 되기 바라기 전에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자녀가 잘되기 전에 성령 구해야 합니다. 교회부흥을 찾기 이전에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상에 교회를 세우신 것은 “예수 복음 전파”를 위한 것입니다. 다른 이유로 교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역사를 중심으로 세상 역사를 통치하시고 말세까지 이끌고 계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 역사의 중심이고 선교는 세상 역사의 존재 이유입니다.

2018.04.15  2부예배 말씀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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