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는 그의 기도의 낙서문에서 “나의 하루는 기적입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 땅에 복음을 들고 와서 의료, 학원, 성서번역뿐 아니라 후배양성에 힘쓰다가 과로로 몸을 병이 들어 1916년 미국으로 건너가 요양했으나 결국 그해 10월 16일 57세의 나이로 사망을 합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미국의 하버드대학의 유명한 심리학자인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에 대한 예찬을 하면서 불행한 사람은 갖지 못한 것을 사모하고 행복한 사람은 갖고 있는 것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사전적 의미를 보면 ‘사람이 생활 속에서 기쁘고 즐겁고 만족을 느끼는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러나 행복하지는 못합니다.
젊은이들의 우상인 연예인들이 조명과 카메라 앵글 앞에서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들의 삶의 뒷모습을 보면 한없이 비틀거립니다.
그 이유는 행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인기와 돈과 명예와 권력이 있다고 해도 그런 것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구설수에 오르고 툭 하면 옥살이를 합니다.
그게 행복한 삶입니까?
석유왕 록펠러는 미국 최대의 부자였지만 “부가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강철왕 카네기는 “백만장자는 웃음이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자동차왕 헨리 포드는 “정비공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항상 기뻐하십시오.”
사도바울의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메섹 사건입니다.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살의에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종교에 심취한 나머지 기독교인들은 박멸하기 위해 사람들은 잡아 죽이기 위해 다메섹까지 쫓아갔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을 죽이기 위해 살의에 가득 찬 사람이 행복하겠습니까?
날마다 모이면 다른 사람의 흉이나 보고 험담하는 사람이 행복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 사건 이후 달라졌습니다.
그는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에 최대의 목표는 영혼 구원입니다.
그는 어떤 희생이라고 감수하고 복음 전파에 도움이 된다면 어려움을 당해도 기쁘다고 했습니다.
복음 전파는 사도바울의 최대 기쁨의 원천이었습니다.
그 기쁨이 빌립보서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는 “기쁨”이란 단어가 19번 나와서 <기쁨의 서신>으로 불립니다.
사도바울은 기쁨의 이유를 언급하면서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전이 되었다.”고 했습니다(12절).
사실 그는 세계의 서울인 로마 복음화가 필요함을 알고 로마에 가기를 원했지만, 그 길이 쉽게 열리지 않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전도하다 체포되자 로마 시민권자로서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청원해 로마로 호송되어 가게 된 것입니다.
혹자는 이런 바울을 하나님의 배려라고 했습니다.
교통비, 안전 문제, 로마인에게 복음의 문을 열게 된 동기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고난을 허락하시지만, 그 고난을 통해 상상을 초월하는 멋진 일을 이루십니다.
성도의 삶에 우연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삶의 제일 목적을 영혼 구원과 선교에 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일이 가장 가치 있고 보람 있고 행복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2019.03.17  2부예배 말씀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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