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에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유다땅에 기근이 들자 두 아들 말룐과 기룐과 아내와 함께 모압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두 아들이 모압여자와 결혼을 했는데 무슨 일인지 엘리멜렉이 죽고 두 아들마져도 죽었습니다.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시어머니는 두 며느리에게 자신은 고향으로 돌아갈테니 너희들은 여기 남아 새로 결혼을 하라고 종용을 했습니다.
그때 큰 며느리는 모압에 남았고 작은 며느리가 홀로된 시어머니를 섬기기 위해 고향을 떠나 남편의 고향인 유다로 갑니다.
거기서 둘째 며느리 룻은 시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섬김니다.
그러다 그 지역 부자인 보아스의 눈에 띄었고 보아스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가 룻기입니다.
그 룻기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말이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룻 4:21-22)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룻기의 저자가 이렇게 족보를 나열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이방여인인 룻의 아들인 오벳이 다윗의 할아버지이고,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벳’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알아야 합니다.
유다는 남편이 죽고 자식이 죽으면 대를 이를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룻이 자식을 낳았습니다.
그러면 이 자식은 누구의 자식이냐고 하면 기업 무를자라고 해서 나오미의 자식이 됩니다.
그래서 낳기는 룻이 낳지만 어미는 나오미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오미가 양육자가 되어 품에 안고 밖으로 나갔는데 동네 여인들이 보고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 이름이 오벳입니다.
오벳이라는 뜻은 섬기는 자란 뜻인데 이 자식이 엘리멜렉의 상속자가 되어 생명의 기업을 이을 뿐만 아니라 유명해지고 나오미가 늙으면 그를 잘 섬기라는 뜻에서 오벳이라고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벳’은 단지 나오미를 섬기는 삶만 살지 않았습니다.
메시아의 족보에 오르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오벳’은 엄청난 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오벳’이 축복의 대명사가 된 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오벳이 탄생하는 과정에는 여러 일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나오미의 철저한 ‘회개’가 있었습니다.
그의 죄는 기근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께 묻지 않고 모압 땅으로 가면 기근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곳으로 이사한 것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게 무슨 큰 죄냐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행동하기 전에 반드시 하나님께 물어야합니다. 
둘째 룻의 ‘순종’입니다.
사실 룻이 시어머니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결혼에 실패한 여인이 시어머니가 시킨다고 다른 남자의 잠자리에 눕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가 믿고 따르는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믿었기 때문에 그녀는 시어머니의 말에 순종하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순종과 믿음은 동전의 앞뒤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증거이고 순종하는 것은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세 번째는 보아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모든 토지가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영영히 팔지 말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레 25:23).
그러나 보아스는 희생을 각오하고 나오미 가정을 위해 기업 무르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룻과 동침하여 오벳을 낳았고 그를 낳아 메시아의 족보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희생이 없는 곳에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게 된 것은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적어도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기심을 버리고 희생적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2019.07.21   2부예배 말씀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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