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따먹지 말라고 하는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서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고 에덴동산에서 쫒겨났습니다.
그럼에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 땅에 번성하고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이 하는 짓이 포악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인간들을 심판하기로 작정하고 비를 이 땅에 쏟아 부었습니다.
그 일로 노아의 식구를 뺀 모은 인류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물 심판에서 노아의 식구가 제외 된 이유는 노아는 당대에 의인 이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의인이란 “하나님을 진짜 믿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인간 편에서 볼 때 노아 홍수의 사건은 사실 너무했습니다.
왜냐하면 만들어 놓고 번성하고 충만하라고 복을 주실 때는 언제고 죄를 지었다고 다 죽여 버립니까? 얼마나 냉혹하고 무자비 합니까?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생각입니다.
창조주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처음 인간을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를 짝지어 결혼을 시켰을 때만 해도 하나님은 너무나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들을 물로 쓸어버릴 때는 오죽하면 그렇게 했겠습니까?
그리고 그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식구들을 살려두시고 다시 인간의 역사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희망이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복을 받는 유대민족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온갖 범죄를 다 저질렀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유대민족을 포로로 끌려가게 하셨습니다.
그런 자기 민족을 바라 볼 때 그는 통곡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거에는 하나님은 모세의 탄원 소리를 듣고 그들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모세와 사무엘이 와서 용서해달라고 기도하고 탄원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이 백성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그리고 절대 용서하지 않는 이유를 두 가지로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는 “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것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입니다.
므낫세는 다윗계 열왕들 중에서 종교 혼합주의를 가장 많이 도입한 사람입니다.
그로 인해서 유다 족속들은 우상숭배의 늪에 더욱 더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이게 죄입니다.
자신만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범죄케 한 죄입니다.

두 번째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나를 버렸고 내게서 물러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 지도자의 배교는 자신 한 사람을 망가뜨리는 것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아는 예레미야는 자신의 백성들을 포기 할 수 없었습니다.
그 기도는 절절합니다.

어쩌면 자기 목숨과 자기 삶 전체가 건 기도입니다.
예레미야의 기도에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낙담에 싸인 예레미야에게 약속을 합니다.
튼튼한 놋쇠 성벽으로 만들어서 이 백성과 맞서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총체적 위기에 몰려있습니다.
북한의 핵개발과 잦은 시험발사로 안보에 대한 불안감을 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의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실상을 다 알고 있습니다.
반드시 함께 하고 도와주고 구원하겠다고 약속합니다.

물론 깨어 있는 소수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깨어있는 소수로 불러 세워주셨습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할 수 있고, 세상 비바람의 폭우 앞에서 어쩔 줄 모를 상황에도 직면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중물과 같은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레미야가 바로 마중물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에 닥칠 가뭄을 예언하시자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3번이나 중보기도 합니다.
왜 우리가 마중물이 되어야 할까요?
첫 번째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마중물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평안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마중물이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 용기를 주시기 때문에 마중물이 되어야 합니다.

 2017.09.17  2부예배 밀씀요약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