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40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로마 병정들에게 끌려가 모진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도 예수님은 이런 자신의 모습을 털 깍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어린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양은 목자가 자신의 털을 깎을 때가 되면 털을 다 깎을 때까지 자신의 몸을 맡겼다고 털을 다 깎고 난 뒤 목자가 엉덩이를 툭 치면 벌떡 일어나 뛰어갑니다.
왜 할 말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성난 민심에 일희일비 하기보다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심으로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오늘 아침 국민일보 8면에 침묵이라는 제하의 글이 실렸습니다.
복음은 말씀 이기 전에 침묵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침묵은 구원의 길을 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언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커다란 축복이고 은총이며 이 언어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냅니다.
그러나 진짜 마음속 깊이에 있는 감정을 담아내는 것은 말이 아니라 침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중요하다”고 했고 “말하기 보다는 듣기를 잘하라고 가르치며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열심히 말을 하고 말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내고 그 말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반응하면서 마음의 상처와 고통을 느끼다가 극단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그러나 워렌 버핏의 말처럼 진정한 힘은 느긋하게 앉아서 논리적으로 상황을 관찰하는데 있다고 한 것처럼 때로는 침묵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고발과 로마 법정은 불법적인 판단과 집행의 과정에서 일어난 비인격적인 모독 행위와 군중들의 배신 앞에서 그는 오직 침묵하심으로서 그는 이사야 선지자가(사53:5-7) 예언한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순절의 기간이 말하기보다 또 상대방의 말에 쉽게 반응하기보다는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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